우리교회가 주님이 이 땅에 세우신 유일한 유산인 신약교회 회복이라는 소원을 가지고 교회를 세워간지 벌써 13년째가 되었습니다. 이 길의 최전선에서 섬기는 분들이 목자님들입니다. 지금까지 언제나 귀한 모범이 되어 주시고, 섬김으로 목원들을 세워 오신 수고에 늘 깊이 감사 드립니다.
목자가 되실 때, 저는 “목자님, 잘 되었습니다”라고 말씀드리곤 합니다. 어떤 목자님이 되물으시지요. “왜요?” 그러면 저는 “목사 심정을 누구보다 잘 알게 되셔서 반가워요”라고 말하며 웃곤 했습니다.
목자님들은 가정교회의 목회자입니다. 목원들의 영적인 성장을 위해 기도하고, 권면하고, 섬기며 함께 삽니다. 함께 울고 웃습니다. 웃을 일도 많지만, 울 일도 참 많습니다. 목원의 삶이 속상해서 울고, 자라지 않아서 울고, 목원의 병든 몸 때문에 울고, 상한 맘 때문에 또 웁니다. 그 때마다 얼마나 무능력한 존재인지 알기에 주님께 나아가 울고 또 웁니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주께서 응답하시길 기다리면서 목원 앞에선 햇살처럼 웃습니다. 우리의 능력을 믿는 게 아니라 주님을 믿기에 웃습니다. 웃을 날 주시고, 주님의 약속을 우리의 소소한 일상에서 이루어 가시는 예수 때문에 미리 믿음으로 고백하고는 웃습니다. 목자의 자리는 그렇게 울고 웃으며 주님의 마음을 배워가는 자리인가 봅니다.
또 제가 목자목녀의 삶을 인도하면서는 종종 이런 농담도 합니다. “목자의 특권을 누리게 되신 걸 축하합니다.” 목자님이 되물으십니다. “무슨 특권인데요?” “상처받을 특권입니다.”
목자님으로 사역한다는 건 상처받는다는 뜻입니다. 목원을 사랑하기에 그의 상처까지 감당하고 사랑한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말처럼 쉽지 않습니다. 우리 예수님이 하신 일이니 쉬울까요? 쉬우면 목자가 아닙니다. 그래서 목원들을 위해 기도하고 섬기다가 먼저 자라는 자리입니다. 주님의 목회를 배워가는 자리입니다. 예수님이 상처받으시고 팔 벌려 우리를 십자가에서 ‘이만큼 사랑한다’하신 모범을 따라 사랑을 배워가는 자리입니다. 하지만 결코 손해보는 자리가 아닙니다. 주님의 사랑을 먼저 누리고 먼저 깊어지고 먼저 자라는 자리입니다. 우리교회의 목자님들을 주님께서 목자로 세우신 이유는 목자님들의 명성과 힘 때문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의지할 줄 아는 힘 때문입니다. 자신의 약함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때로 목자님들이 앞서 걸으며 더 약해지시길 기도합니다. 주님의 위대하심 나타내는 더 작은 자로 일상을 사시길 간구하지요. 그것이 섬기는 자에게 먼저 주시는 하나님의 놀라운 복이기 때문입니다.
이번에 목자 수양회를 다녀오면서 우리 목자님들의 함께하는 모습과 삶의 간증으로 인해 너무 행복했습니다. 내 삶을 주님께 먼저 드려보고, 그 삶이 어떤 모습이었는지를 확인하고 그것을 간증하며 살아가는 삶. 저는 우리교회의 목자님들이 이런 모습으로 자라가는 것이 너무 좋습니다. 그래서 우리 식구들 모두가 이렇게 행복한 목자의 길로 걸어가는 날을 기대하고 그려봅니다.
우리의 참 목자 되신 예수님이 주신 약속을 따라 목자의 길을 가는 목자님들의 섬김에 깊은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