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결혼예배, 임직 예배, 장례예배에 참석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사랑하는 사람들의 기쁨과 슬픔과 의미를 함께 나누는 것도 좋은 일이지만, 바로 그 시간이 저 자신에게는 본질로 그리고 초심으로 되돌아가는 은총의 시간이 되기 때문입니다.
제가 결혼할 때의 감격과 기쁨과 감사 그리고,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서약했던 저의 서약을 되돌아보는 시간이 됩니다. 제가 목사로 안수 받을 때 하나님 앞에서 저의 감격과 결단을 기억하고 회복하는 시간이 됩니다.
저에게 가장 유익한 자리가 있다면 그 시간은 천국환송 예배의 자리입니다. 제가 좋아하는 성경 구절 가운데 “초상집에 가는 것이 잔치집에 가는 것보다 나으니 모든 사람의 결국이 이와 같이 됨이라 산 자가 이것에 유심하리로다.(전도서7:2)”는 말씀이 있습니다. 장례에 참석할 때마다 이 말씀이 진리임을 늘 확인하게 됩니다.
지난 주간 있었던 故 전인식 장로님의 천국환송예배에 많은 시온영락 가족이 함께 해 주셔서 감사했습니다. 우리에게 천국의 소망이 있다는 것은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가장 힘들고 슬픈 시간에 혼자가 아니라 함께 슬픔을 나눌 수 있는 믿음의 식구가 있다는 것은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저와 여러분의 믿음을 무엇으로 세상에 보여 주시겠습니까? 성경지식으로 보여주시겠습니까? 청산유수와 같은 기도로 보여주시겠습니까? 교회활동과 사역에 헌신하는 열심으로 보여주시겠습니까?
예수님께서는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줄 알리라”고 선포하셨습니다. 사랑한다는 것은 “우는 사람과 함께 울고, 웃는 사람과 함께 웃는 것(롬12:15)”에서 가장 생생하게 나타난다고 생각해 봅니다. 공동체가 주는 가장 큰 축복은 나눔에 있습니다. 기쁨은 나누면 배가 되고, 슬픔은 나누면 반이 되는 것이 많은 사람들의 공통된 경험입니다. 우리 시온영락교회에서, 우리 목장에서 바로 이와 같은 의리 있는 사랑이 더욱더 풍성하게 자라가기를 간절히 소망하며, 전정자 권사님과 유족들께 하나님의 위로가 풍성하기를 간구합니다.
최근 우리 교회는 “천국”이라는 단어를 정말 많이 사용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마태복음을 묵상하면서 예수님께서 천국에 대해서 많이 말씀하셔서 천국 설교도 여러 차례 했었고, 故 전인식 장로님의 천국환송 예배를 함께 드리며 천국 찬송도 많이 불렀고, 그리고 오늘 있는 천국장터로 인해서 천국이라는 단어를 입에 달고 다닌 것 같은 그런 느낌을 갖습니다.
저는 목사임에도 한동안 천국, 지옥 이런 이야기를 잘 하지 않았습니다. 무식해 보일까 두려워서 그랬습니다. 천국이라는 말 대신에 하나님 나라라는 말을 사용하기를 더 좋아했습니다. 같은 말이지만 천국이라는 단어에는 “죽음너머” 라는 뉘앙스가 강한 것 같고, 하나님 나라라는 단어에는 “이 땅에서” 라는 뉘앙스가 더 강한 것 같습니다.
하나님 나라는 하나님께서 통치하시는 나라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온전한 사랑 안에는 반드시 공의가 담겨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는 은혜만 아니라 진리도 함께 충만하고, 하나님 나라는 사랑만 아니라 정의도 완전하게 펼쳐집니다. 천국의 모습니다.
사랑과 정의가 온전히 지배하는 세상이 펼쳐진다면 하나님이 안 계신다 하더라도 얼마나 아름다울까요? 그래서 많은 지성인이라고 하는 분들이 그들에게는 하나님이 없음에도 그런 세상을 추구하고 꿈꾸고 있습니다. 그러나 인간에게는 사랑과 정의의 세상을 만들어갈 수 있는 능력이 없습니다. 나 자신의 모습과, 386 운동권 정치인으로 대표되는, 정의를 외치는 지성인들의 민낯을 보면서 그 점이 더욱 더 생생해 집니다.
저는 이제 천국이라는 단어를 훨씬 더 좋아하게 되었습니다. 죽음 너머 하나님 앞에 서게 될 소망을 가진 사람이라야, 세상을 이기고 세상을 거슬러 살 수 있는 참된 용기를 가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통치하는 천국은 이 땅에서부터 맛볼 수 있습니다. 우리의 천국 소망이 우리의 목장과 교회를 점점 더 생생한 “하나님 나라”의 모형으로 만들어 가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