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교회는 지금 다니엘 금식기도를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우리 공동체 전체적으로 적극적으로 함께 참여한다는 느낌보다는 무관심 내지는 어떤 저항감 같은 것이 느껴졌습니다. 물론 제가 잘못 느꼈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제 마음속에 있는 이 불편한 마음의 정체가 무엇일까 생각하며 기도해 보게 됩니다. 기도하면서 제 마음속에 가장 먼저 떠오른 생각이 수단과 목적이라는 것입니다. 무엇인가가 특별히 나 자신이 목적이 될 때는 의미와 가치와 보람을 갖게 되지만, 또 다른 것을 이루기 위한 수단이 될 때에는 어떤 불편한 마음 같은 것이 찾아오기 마련인 것 같습니다.
목회자 컨퍼런스를 잘 치러내기 위해서는 기쁘고 즐겁게 할 수 있는 힘이 필요합니다. 그런 힘을 낼 수 있도록 부흥회를 갖습니다. 그리고 그 부흥회에 하나님의 은총과 은혜를 기대하면서 다니엘 금식기도와 열흘간의 심야기도회를 갖습니다.
전체적으로 보면 “목회자 컨퍼런스”라는 행사를 위해서 나(성도님 여러분들) 자신도 이용되고, 부흥회도 이용되고, 그리고 다니엘 금식기도와 열흘 심야기도회도 이용된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습니다. 그리고 이런 세팅을 만든 사람이 바로 담임목사인 저입니다.
그래서 한편으로 시온영락 가족여러분들께 죄송하고, 또 이런 세팅 속에서 부흥회를 인도하시는 강사 김인기 목사님은 또 얼마나 마음에 부담과 짐이 될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죄송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저와 여러분은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목회자 컨퍼런스를 잘 치르고 싶은 제 마음속에는 여러 가지 동기가 공존합니다. 목회자 컨퍼런스를 잘 치르면 가장 큰 영광은 저에게 돌아오게 될 것입니다. 그런 칭찬과 인정을 받고 싶은 마음이 제 속에 없는 것은 아닙니다. 저는 신앙의 철이 든 이후로 늘 그것과 싸워왔고, 그렇기 때문에 “저의 영광”을 위한 것이라면 아예 시도조차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저는 저의 체면에 대해서는 거의 죽은 사람입니다. 체면이 구겨지면 기분은 좋지 않지만, 그러나 저는 저의 체면이 구겨지는 것을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이번 목회자 컨퍼런스를 통해서 제가 가장 원하는 것은 저와 여러분이 더 행복해 지기 위해서 성장하고 성숙하는 것입니다. 어린아이들은 놀 때 행복하고, 청소년들은 무엇인가 배우고 성숙할 때 행복하고, 어른들은 일할 때 행복하고, 그리고 인생이 여물어 가면서는 이웃을 섬길 때, 인생의 황혼에서는 하나님과 관계가 깊어져야만 행복해지는 것입니다.
저는 컨퍼런스를 통해서 저와 여러분 자신이 다음 단계로 나아가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그런 차원에서 저의 의도와 목적은 이기적입니다. 우리의 성장과 행복의 기회가 될 것입니다. 그래서 조금 무리하다 싶은 다니엘 금식기도, 심야기도회, 노회, 부흥회, 목자 임직식, 목자목녀 간담회, 목자컨퍼런스 그리고, 이어지는 국제가정교회사역원 이사회까지... 저와 여러분이 행복하게 돌파해 볼 수 있기를 기대해 보는 것입니다. [와~ 저걸 다해야 해? 그런 생각 안하셔도 됩니다. 더 잘하려고 용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나는 행복하게 할 수 있는 만큼만 하면, 우리 교회의 지휘자이신 성령님께서 이루어 가신다는 것을 보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 다음으로 이번 컨퍼런스를 앞두고 저에게 간절한 소원이 있다면 참석하시는 모든 목사님, 사모님, 선교사님들께 “섬김”의 파워와 행복이 전달되어지고, 교회의 본질과 영광스러운 주님의 교회를 세우고자 하는 그들의 여정이 더욱 더 큰 확신 가운데 계속되어지기를 소망하는 것입니다. 가면을 쓰고는 절대로 이룰 수 없는 일입니다. 오직 성령님께서 저와 여러분의 주인 되어 주시고, 지휘해 주시고, 부어주실 때만 가능한 것입니다.
‘나는 속이 뻔히 들여다보이는 그런 의도대로 움직여 주는 꼭두각시가 아니다.’ 이렇게 생각하면서 “나의 길”을 고집스럽게 계속 가시겠습니까? 아니면 혹시 나를 이용하려는 의도가 숨어있을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 하더라도, 선한 의도도 충분히 크기 때문에 그것을 믿어주며 기꺼이 이용당해 주겠다는 심정으로 함께 한 번 해 보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