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스턴 서울교회 이수관 목사님이 예전에 쓰셨던 목회칼럼입니다. 제게 큰 깨달음도 주었고, 또 우리에게 필요한 메시지일 것 같기도 해서 함께 나눕니다.
목회를 하면서 3자대면이라는 것을 서너 번 해 본적이 있습니다. 양자가 서로 상대방을 비난할 때 보면 너무나 극명하게 말이 갈리는 때가 있습니다. 한 쪽은 상대편이 이러이러한 말을 했다고 하고, 다른 쪽은 그 말을 한 것은 내가 아니라 상대방이라고 합니다. 듣다 보면 화가 나지요. ‘둘 중에 한명은 분명히 거짓말쟁이구나. 이렇게 괘씸할 수가 있나. 내가 거짓말쟁이를 밝혀 내리라.’ 이런 마음으로 3자대면을 해 보지만 한번도 만족한 결과를 얻은 적이 없습니다.
이렇게 되는 이유는 사람의 말과 기억이라는 것이 도무지 믿을 수 없는 존재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일단 말에는 다섯 가지의 다른 메시지가 있다고 하지요. 첫번째는 내가 원래 하려고 의도했던 말, 오리지널 메시지입니다. 하지만 그 말은 그대로 내 입에서 나가지 않습니다. 말솜씨의 부족으로, 또는 당시 상황에 따른 압박으로 조금씩 왜곡이 됩니다. 그래서 두번째는 실지로 내 입에서 나간 메시지입니다.
하지만 말한 사람은 자기가 뭐라고 말했는지 정확하게 알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원래 하려고 했던 말과 입에서 나간 말이 틀리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세번째는 자기가 말했다고 믿고 있는 메시지입니다. 하지만 인간의 기억력은 시간이 지나면서 무너지고 새로 쌓이기를 반복합니다. 따라서 내가 A라고 말했더라도, AA라고 말했더라면 좋았겠다 싶어서 ‘내가 AA라고 말 했어’ 라고 한번만 얘기하면 그 다음부터는 기억력이 왜곡이 되면서 본인이 AA라고 얘기했다고 철썩 같이 믿게 됩니다. 여기까지가 얘기한 사람의 입장입니다.
하지만 문제는 듣는 사람은 또 자신만의 필터를 가지고 듣는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상대방이 A라고 말했더라도 만약 이 사람이 Aa로 마음이 기울어져 있다면 Aa라고 듣기가 쉽습니다. 그래서 네번째는 그 사람이 실지로 들은 메시지입니다. 하지만 들은 사람의 기억력도 시간이 가면서 변하기 시작합니다. 여러가지 생각들과 다른 사람과의 대화들을 통해 내가 분명히 들었다고 믿는 메시지가 다섯 번째의 메시지입니다.
이렇게 메시지가 다섯 가지가 있기 때문에, 그리고 그 메시지들이 본인의 기억력 왜곡으로 인해서 이리저리 바뀌기 때문에 둘 중에 한 명 거짓말쟁이를 찾아내겠다고 생각하며 불렀던 3자대면에서 아무것도 찾아내지 못하고 끝이 나기 일쑤였습니다. 한 사람은 분명히 그렇게 들었다고 하고 상대방은 난 절대로 그런 말을 안 했다고 합니다. 결론은 둘 중에 한 사람이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사실은 둘 다 사실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만 기억과 메시지에 오류가 있을 뿐인 것이지요.
이것을 알고 난 후에는 제가 하는 것이 몇 가지 있습니다. 첫번째 누군가가 나에 대해서 안 좋은 말을 했다고 전해 들을 때, 일단은 별로 흥분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 사람이 그럴 사람인지 아닌지를 생각해 보고 아니라고 생각이 들면, ‘잘못 들었을 거야’ 아니면 ‘말이 의도치 않게 나왔을 거야, 그런 의도로 한 얘기가 아닐 거야’ 라고 이야기 합니다. 그렇게 얘기하고 나면 기분도 좋아지고, 또 그것이 사실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두 번째는 어떤 사람이 이러이러한 얘기를 했다는 말이 들려서 그에게 확인을 했을 때, 본인은 그런 말을 하지 않았다고 부인하면 저는 진심으로 그의 말을 믿어 줍니다. 말에는 실수가 있어서 의도하지 않은 말이 입 밖으로 나갈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기 때문입니다.
세 번째 말에 대해서 분란이 일어날 때는 두 사람 말을 다 믿어주고 더 이상 그 문제가 커지지 않도록 합니다. 키워봐야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