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2주 후면 2019년의 단기선교여행이 시작됩니다. 올해 우리교회가 떠나게 될 멕시코와 나바호의 선교여행을 생각하며 기도하다가 제가 다녀왔던 첫 선교여행이 떠올랐습니다.
저는 참 고집이 센 사람이었습니다. 제가 예수님을 처음 만나던 1992년 여름에 CCC 여름 수련회를 갔을 때의 일이었습니다. 당시 15000명 정도의 대학생들이 함께 모여 메시지를 듣고 있던 수련회의 두 번째 저녁이었습니다. 주 강사로 섬기셨던 김준곤 목사님이 그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선교에 대한 메시지를 전하셨고 “평생이나, 1년, 혹은 1달이나 단지 며칠이라도 선교사로 나가실 마음을 가진 분들은 모두 일어나십시오”라고 우리를 향해 사명의 초청을 하셨습니다. 제 주변에 있던 분들이 모두 일어났습니다. “단지 며칠이라도”라고 하셨으니 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이겠지요. 그런데 저는 그 때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그 순간은 아직 예수님을 만나기 전이었고 제 평생에 선교에 대한 헌신은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분위기에 휩쓸려서라도 일어설 만도 했는데 자리에 꿋꿋이 앉아 주변에서 일어나는 사람들을 보며 “정말 갈까, 저 사람들?” 이런 질문을 했었습니다.
그 메시지가 끝난 후 저녁에 기도를 하다가 저는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1992년 6월의 어느 밤이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저를 가장 먼저 인도하셨던 곳이 그 해 7월에 떠났던 일본 고베 단기선교여행 이었습니다. 8박 9일의 일정으로 떠났던 그 첫 선교여행은 제게 참 힘든 시간이었습니다. 저희 팀원들은 약 15명 정도로 구성되어 있었는데 서울대와 이대의 조합이었습니다. 거기에 일본어과를 다니시던 한 분이 통역으로 함께 하셨습니다. 연습할 때부터 심상치 않던 분위기는 일본에 도착한 날로부터 살얼음판을 걷는 듯한 관계로 변해가기 시작했습니다. 서로를 인정하기보다 자기의 의견을 내세우는 일이 많았고, 그로 인해서 서로 간에 말과 눈빛으로 상대를 베어내는 일이 점점 많아졌습니다.
우리가 갔던 교회가 상가건물에 있었기 때문에 거기에서 잠을 잘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자매들은 목사님 집에서 자고 형제들은 “기도”라는 이름을 가진 교회 성도님의 집에서 기거했습니다. 낮에는 함께 힘써 사역했지만 저녁마다 불평이 쏟아졌고, 서로간의 관계는 점차 멀어지는 상황이었습니다. 제게는 첫 단기선교 여행지였기에 많이 실망도 하고 힘들기도 했었던 시기였습니다. 거기다 떠나기 전날 그동안 전도했던 사람들을 모두 모아서 KOREAN NIGHT을 하며 예수님을 영접하게 하는 시간이 있었는데 8일의 사역의 결과로 그 자리에 온 사람의 숫자가 두 명의 형제였습니다. 그것도 통역을 하던 누님에게 반해서 온 사람들이었지요.
어떤 방향에서 보아도 실패한 듯한 단기선교여행이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 곳에서 크게 자랐습니다. 서로 간에 의견이 부딪힐 때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배웠습니다. 마지막 밤에 두 사람이 왔을 때 크게 실망했지만 그 두 분이 그 날에 예수님을 영접하고 교회의 식구가 되는 것을 보며 선교의 결과는 숫자로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배웠습니다. 우리가 떠나던 날 배를 타고 한국으로 오게 되었는데 저희를 재워주었던 “기도” 형제는 회사를 쉬면서까지 항구로 나와서 떠나는 우리를 아쉬워하며 눈물을 흘려주었습니다. 그 사랑이 마음에 남아 그 후로 저는 일본에 다섯 번을 더 가게 되었습니다.
이제 시온영락교회의 단기선교여행이 곧 시작됩니다. 선교에 실패란 없습니다. 저는 이 시간이 참석하는 모든 분들의 삶에 잊을 수 없는 기억을 남기리라 확신합니다. 올 여름이 그렇게 될 수 있도록 기도해 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