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흘 쯤 전에 아내가 물었습니다. “다음 주 수요일이 무슨 날인지 알아요?” 대답 대신에 얼굴을 빤히 쳐다보니까, “다음 주 수요일이 우리 결혼 25주년 기념일인 것 알고 있어요?” 다시 물어왔습니다.
아차! 하는 마음으로 이 상황을 어떻게 타개해 나갈 것인가 생각하고 있는데, 남편인 제가 아무런 계획도 없을 줄 알았기 때문에 본인이 이벤트를 준비해 두었다고 합니다.
몬트레이에 호텔을 예약해 두었으니 수요낮예배를 마치고 떠나면 된다는 것입니다. 한편으로 미안하고 당황스러운 상황이었는데 아내가 대신 이벤트를 준비했다고 하니 감사하고 고마울 따름이었습니다.
사실 우리교회가 조만간 예배당을 옮겨야 하는 상황 속에서 새로 이사 갈 예배당을 알아보는 것과 장기적인 안목에서 예배당을 지을 수 있는 교회부지 구입이 가능한지를 검토해 보는 것에 저의 온 마음이 다 쏠려 있다보니, 다른 것은 거의 생각해 보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지난 수요일, 목요일 오전에 있을 기도의삶 성경공부 인도는 강권사님께 부탁드리고, 수요낮예배를 마치고 몬트레이로 떠났습니다. 수요일 저녁에는 이탤리언 레스토랑에서 조금 이른 저녁식사를 한 후에 함께 해변을 좀 걷고, 목요일에는 느지막하게 일어난 후, 호텔에서 바다를 바라보면서 아침식사를 하고, 체크아웃 한 후 두 사람이 함께 타는 긴 자전거를 한 시간 렌트해서 해변을 달려본 것이 특별 이벤트의 전부였습니다. 그리고 목요일 저녁 삶공부를 위해서 서둘러 귀가 했습니다. 그리고 때 맞춰 찾아온 감기로 둘 다 고생을 하고 있는 중입니다.
1박 2일의 시간을 그곳에서 보내면서 제가 참 놀 줄 모른다는 것이 새삼스럽게 느껴졌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재미없는 남편과 25년을 함께 살아준 아내에게 미안한 마음과 더불어 고맙고 감사한 마음을 가져봅니다.
그러나 가만히 생각해 보면 세상에 그렇게 재미있는 일이 많지 않은 것 같습니다. 남들이 하는 것을 보면 부러운 마음도 들지만, 어느 것 하나 쉬운 일이 없습니다. 낚시도, 골프도, 파도타기도, 테니스도, 탁구도 즐기면서 할 수 있기까지는 많은 시간과 돈과 수고와 노력을 투자해야 하고, 체력도 있어야 합니다.
영화 관람도, 컴퓨터 게임도, 소주 한 잔 하는 것조차도 마찬가지인 것 같습니다. 사실 그 자체의 즐거움 보다는 누구와 함께 그것을 즐길 수 있는가가 훨씬 더 중요하다는 생각을 해 보게 됩니다. 그런 의미에서 저와 여러분에게 목장이 있다는 것은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됩니다.
무슨 날인가? 무엇을 하는가? 그런 것보다 훨씬 더 중요한 것이 누구와 함께하는가? 그리고 어떤 관계 속에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시시한 일이라도 좋아하는 사람,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하면 행복하고 즐겁습니다. 아무리 대단하고 멋진 일이라도 좋아하지 않는 사람, 불편한 사람들과 함께하는 것은 고통일 뿐입니다.
25년이란 짧지 않은 세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라는 같은 방향을 바라보고 달려왔기 때문에, 그리고 하나님께서 멋진 선물들을 이미 주셨기 때문에, 기념일조차 기억해 주지 않고 선물도 아무것도 해 주지 못했지만 결혼 25주년 기념일이 지옥 같은 날이 되지 않고, 우리에게 없는 것 때문에 괴로워하는 날이 아니라, 있는 것을 감사하며 누릴 수 있게 된 것 같습니다. 저보다 더 하나님을 사랑하는 아내에게 깊이 감사하게 되고, 또 존경하게 됩니다. 결혼 50주년은 제가 날짜도 6개월 전쯤부터 잘 챙기고 아주아주 좋은 이벤트와 선물도 해 줄 수 있기를 기대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