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85년 고종은 선교사이자 미국 외교관 역할을 했던 알렌의 건의를 받아들여 광혜원을 설치하였습니다. 후에 제중원으로 이름을 바꿉니다. 제중원은 조선정부가 설립한 최초의 서양식병원입니다. 미국에서 의학을 공부했던 알렌이 초대 의사를 하고 나중에 스크랜턴, 헤론, 하디 등의 의료선교사들이 진료를 하게 됩니다. 1894년 동학농민전쟁, 청일전쟁, 갑오개혁 등이 발생하던 중, 일본제국이 경복궁을 점령하게 되면서 고종은 연금 상태에 놓이게 되고 조선의 운명이 일제의 손으로 넘어갑니다. 이에 의료선교사 에비슨의 권유로 제중원을 미국 북장로회로 이관합니다. 이후 이관과 증축으로 인해 1899년 미국 사업가 세브란스로부터 거액의 기금을 기증받아 지금의 서울역 앞자리에 세브란스 병원을 새로 건축하게 됩니다. 많은 이들의 노고를 통해 조선에도 근대의료방식이 들어오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당시 조선의 여성들은 세브란스 병원을 잘 이용할 수 없었습니다. 당시 조선이 남녀 사상이 유별나게 강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1890년대에 여성전문병원 ‘보구여관’이 생겨나게 됩니다. ‘보구여관’은 조선의료의 선구자 로제타 셔우드 홀이 의사로 진료를 보던 곳입니다. 그녀의 통역을 맡아 일을 도와주던 14살의 김점동은 아버지가 선교사 아펜젤러의 집에서 일하는 것을 계기로 아펜젤러의 소개로 한국 최초의 근대 여학교인 이화학당에 입학하게 됩니다. 1891년 세례를 받고 김에스더로 이름을 바꿨다가 결혼 후 남편의 성을 좇아 박에스더로 다시 이름을 바꿉니다. 졸업 후 로제타 셔우드 홀의 통역을 맡으면서 의사로서의 꿈을 갖게 되고, 이 후 도미하여 볼드모트 의과대학에서 공부를 하고 조선으로 돌아와 조선 최초의 여의사가 됩니다. 그녀는 보구여관에서 의사로 재직하다가 나중에는 황해도와 평안도 일대를 찾아 진료를 하기도 했습니다. 한 여인의 헌신은 특정 계층이 아닌 많은 민중에게 의료혜택을 가져다주게 됩니다.
성경으로 돌아가서 보면 초대교회 당시 세계에서는 종교가 유력한 자들의 특권이었습니다. “종교가 지친 자에게 위로를 주고, 죄에 눌린 자에게 힘을 주고, 중생에게 깨달음을 주지 못했습니다. 당시 종교에서 병자와 무식한 자는 제외되었습니다. 철학자들도 부유한 자, 지식인, 정숙한 자만을 대상으로 삼았습니다. 깨끗한 손과 건전한 이해력을 가진 자들만 초대받았습니다. (롤란드 앨런, 바울의 선교 vs. 우리의 선교)” 그런 와중에 별다른 부류의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그리스도인들 이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병자와 죄인을 초대했습니다. 시대를 극복해 나갈 수 있는 힘이 그리스도인에게 있었던 것입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시대를 극복하는 힘입니다. 시대에 매몰되어 그 문화를 그대로 좇아 살아가서는 안됩니다. 이러한 힘은 부활의 주님을 인격적으로 만난 사람만이 소유할 수 있습니다. 부활의 주님을 통해 우리가 살아가야 할 사명을 발견하고 실천할 수 있어야합니다.
우리교회의 사명은 “영혼구원과 제자양육”입니다. 이 사명을 위해서 우리가 바라보는 방향이 어디인지를 다시 한 번 확인하는 부활의 아침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교회가 필요한 사람이 아니라, 교회를 필요로 하는 사람”을 향해서 나아가는 우리의 발걸음이 쉬지 않아야 하겠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다짐해 봅니다. 이 사명을 위해서 걸어가는 우리에게 지난 주에 베풀었던 세례식과 이번 주에 함께 축하하는 허그식은 참으로 의미있는 시간입니다. 부활의 의미가 살아나는 것이고 살리는 것이라면 이렇게 사람이 살아나고, 관계가 살아나고, 삶의 의미가 살아나서, 우리가 살아가는 지금 이 땅에서의 삶이 천국이 되어가는 일이 우리 안에서 지속적으로 일어나는 공동체가 되어가는 일이 우리 안에서 일어날 수 있도록 하십시다. 그래서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교회가 되어갈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