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지난 목요일에 강성구 장로님과 함께 노회에 참석하고 돌아왔습니다. 식사 중 노회장 목사님과 얘기하다가 제가 무슨 이야기를 하지도 않았는데 갑자기 가정교회를 하는 우리 교회에 대한 칭찬을 하시는 겁니다. 할 수 있으면 하고 싶지만 당신은 다른 길을 택했다고 하시면서 말입니다. 그 때 제 마음에는 영혼 구원하여 제자를 삼는 이 한 길을 걷기 위해 힘쓰는 우리 식구들이 감사하기도 하고, 그 길에 함께 하고 있는 제가 행복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면서 예수님을 행복하게 믿는 길에 대해서 다시 한 번 떠올려보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을 영접하면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순간부터 우리는 그 분의 사랑과 관심의 핵심 안으로 들어갑니다. 이제부터 우리에게 일어나는 어떠한 일도 우연은 없습니다. 과거와 현재와 장래를 한 점에서 보시는 하나님의 섭리 속에서 빚어지고 있는 일입니다. 행복과 기쁨은 물론 고난과 역경도 그 분의 손 안에 있습니다. 나를 나보다 더 잘 아시는 하나님께서 축복과 고난을 적절한 비율로 섞어 우리를 예수님 닮은 하나님의 멋진 아들, 딸로 키우십니다.
이 그림을 그리고 나면 신앙생활이 즐거워지고 담대해 집니다. 하나님이 어떤 재료로 우리를 빚으실 지 기대도 됩니다. 축복이 와도 교만하지 않고 고난이 와도 인내할 수 있습니다. 축복과 고난이 낭비되는 법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의 한 복판에 우리가 자리잡고 있다는 확신 때문입니다.
신앙생활을 하면서 자주 낙심하는 분들을 보면 이 그림을 제대로 그리고 있지 못한 것을 봅니다. 그래서 축복이 소비되고 고난은 낭비됩니다. 하나님과 이웃을 더 잘 섬기라고 주신 복을 흘러 보내지 않아서 엉뚱한 곳에 소비되고, 예수님 닮은 제자의 힘줄을 갖추라고 주시는 고난을 인내하지 못해서 아깝게 낭비됩니다.
몸에 근육을 만드는 분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숨이 턱에 넘어갈 정도로 마지막 힘을 쏟아 부을 때 비로소 원하는 근육이 생긴다고 합니다. 힘들다고 거기서 멈추면 원하는 근육은 절대 생기지 않습니다.
신앙의 근육도 마찬가지입니다. 고난이 올 때 그 고난은 결코 만만하지 않습니다. 커 보이고 힘겹습니다. 마주하고 싶지 않습니다. 하지만 고난은 우리 쪽에서 커 보여야만 훈련이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때마다 포기하고 타협점을 찾아 숨는 일을 반복하면 믿음의 근육은 생기지 않습니다. 피할 길을 주시든지 이길 힘을 주시는 하나님의 약속을 붙들고 그 아래 머물러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과 관심의 한 복판에 있다는 사실을 꼭 붙들어야 합니다.
고지 바로 앞에서 멈추는 것보다 아쉬운 일은 없습니다. 큰 숨 한번 들이쉬고 한 발자국만 내 디디면 되는데 번번이 그 앞에서 멈추곤 하는 모습을 보면 안타깝습니다. 한번만 성공하면 근육도 붙고 자신감도 붙어서 또 다른 고지를 담대함으로 마주 할 텐데 거기서 주저앉을 수는 없습니다.
믿음의 고지를 정복하기 위해서 두가지를 기억합시다. 하나님의 약속과 하나님의 성품입니다. 신실하신 하나님은 반드시 약속을 이루시고 사랑의 하나님은 결코 우리를 떠나지 않으십니다. 우리의 여리고를 한 번 무너뜨려 보고, 우리의 가나안을 한 번 정복 해 볼 때, 비로소 이기는 습관이 나의 것이 됩니다. 우리는 다른 이들이 부러워하는 올바르고 행복한 길로 가고 있습니다. 고지 앞에서 멈추지 맙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