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니엘서 1장을 보면 다니엘과 그의 친구들은 참 이상한 일을 합니다. 그들은 이제 전쟁의 패전국이 되어버린 유다의 젊은이로서 새롭게 발을 붙이고 살게 된 바벨론에서 반드시 성공해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리고 성공을 위해서라면 어떤 일도 감수할 수 있는 것이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에도 많은 이들이 가진 생각이었습니다. 그 와중에 왕궁에서 일할 수 있는 기회를 잡았다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그것을 잡아야 하는 상황이지 않았겠습니까? 그런데 이들은 “왕이 내린 음식과 포도주로 자기를 더럽히지 않겠다고 마음을 먹고, 환관장에게 자기를 더럽히지 않을 수 있도록 해 달라고 간청” 합니다. (다니엘 1:8) 세상의 방법이 아니라 하나님의 방법을 선택해 보겠다는 것입니다. 모두가 옳다고 하는 길이 아니라 하나님이 옳다고 하시는 길로 걸어가 보겠다는 것입니다. 어리석은 것 같습니다. 유별스러운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들의 선택의 결과는 놀랍습니다. 3년의 교육기간이 끝난 후에 교육을 받은 모든 젊은이들을 왕 앞으로 데리고 갔는데 “그들 가운데서 다니엘과 하나냐와 미사엘과 아사랴가 가장 뛰어났으므로, 그들로 왕을 모시게” 하였습니다. (다니엘 1:19) 세상의 방법을 선택한 이들을 뛰어넘는 하나님의 은혜가 하나님의 방법을 선택한 사람에게 부어졌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열흘 심야기도회를 하고 있습니다. 기도회가 끝나고 모두가 집으로 간 후에는 저와 제 아들이 거기에 남습니다. 바닥에 떨어진 달걀 껍질들과 설탕을 줍고 닦고, 탁자를 정리하고 나면 20분 정도는 훌쩍 지납니다. 저야 목사이기 때문에 그것이 제가 해야 할 일입니다. 그런데 그런 저를 옆에서 묵묵히 돕고, 무릎 꿇고 휴지 한 조각으로 바닥을 닦아내고 있는 은석이를 보면 참 대견합니다. 학교는 벌써 시작했습니다. 이번 학기에 AP 수업을 두 개를 신청을 해서 벌써 숙제가 쌓이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은석이는 목사의 아들이기 때문에 억지로가 아니라 당연한 기쁨으로 기도의 자리를 선택했습니다. 그 시간을 빼기 위해서는 그 전에, 그리고 돌아와서 공부를 마무리할 수밖에 없습니다. 새벽 1시에 잠이 드는 날도 있더군요. 그리고는 0교시를 듣기 위해서 아침 6:40이면 집을 나섭니다. 그러면서 기도의 자리에 서서 학기의 시작을 하나님의 방법으로 하고 있는 제 아들을 보면 참 좋습니다. 그리고 기대가 됩니다. 다니엘과 세 친구처럼 사람의 방식, 세상의 방식이 아니라 하나님의 방법으로 학기의 첫 시작을 하는 은석이에게 어떤 은혜가 쏟아질지가요. 저는 상상할 수 없기에 제게는 낯선 하나님의 모습이 은석이의 지혜와 능력을 지켜주실 것이라는 것을 말입니다.
우리는 지금 세이레 동안 다니엘 금식을, 열흘 동안 심야기도회를 지나가고 있습니다. 그 속에서 찬양이 조금씩 회복되는 모습을 봅니다. 말씀 속에서 성령의 열매가 하나님의 성품이고 그 성품은 관계 속에서 우리 삶에 이루어진다는 것을 듣고 배우고 경험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 안에서 하나님의 은혜가 하루하루를 지날수록 더욱 커지는 것을 또한 경험하고 있습니다. 심야기도회의 주제는 “새 학기를 준비하는 자녀들을 위한” 것입니다. 저는 여기에 우리의 믿음이 필요한 부분인 것 같습니다. 자녀들의 새 학기는 이미 시작된 분들이 많을 것입니다. 우리의 삶과 자녀의 삶에 하나님의 방식으로 시작하는 경험을 아로새기는 시간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뭐 그런걸...” 하다보면 우리는 익숙함의 함정에 빠지게 됩니다. 하나님의 방법을 붙잡을 때 우리에게 부으시는 주님의 은혜를 함께 경험해 보십시다. 자녀들의 손을 붙잡고 “가자! 기도하고 학기를 시작해보자! 그리고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를 바라보자!” 이런 믿음의 결단이 함께 일어나는 시간이 되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