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에게는 봄의 입구로 여겨지고 누군가에게는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내고, 기억과 욕망을 뒤섞고, 봄비로 잠든 뿌리를 뒤흔드는” (T.S. Eliot "황무지) 잔인한 달로 기억되는 4월이 다가옵니다. 엘리엇은 겨울은 “대지를 망각의 눈으로 덮어주고” 비축해 둔 식량으로 목숨을 연명할 수 있는 때였는데 이제 자리에서 일어나서 일하기 시작하라고 말하는 4월이기에 잔인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좀 더 쉬운 비유로 설명해본다면 다 잊고 더 편히 자고 싶은 사람에게 아침 햇살은 어서 일어나라고 흔들어 깨우는 자명종처럼 이제 일의 시작을 알리는 4월은 잔인하기 짝이 없다는 것이지요.
하지만 우리는 망각 속에서 편안 속에서 잠자며 살아갈 수만은 없습니다. 우리의 삶에서 다시 일어나 새로워지고 변화하고 일하는 시간을 온 몸으로 맞이해야 합니다. 우리교회도 그런 4월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1. 4월 7일 (주일) 주일 성찬예배
1년에 3번 있는 주일의 성찬예배입니다. 송구영신예배 때 성찬의 예배를 드린 후에 두 번의 토요 새벽 성찬예배를 거친 후에 다시 전 교인이 함께 참여하는 성찬의 예배를 드리게 됩니다. 이 성찬의 예배를 통해서 우리가 돌아보아야 하는 자리는 ‘관계’의 자리입니다. 마태복음 5:23-24은 우리가 하나님께 예배하는 자리에 나아오다가도 형제자매에게 원한이 있는 일이 기억나면 그이와 화목한 후에 와서 예배를 드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종교개혁자 칼빈도 자기가 목회하던 교회에서 관계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이에게 성찬의 떡과 잔을 주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다음 주에 있는 주일 성찬예배의 시간까지 우리는 나와 주변의 관계가 바르게 세워져 있는지를 깊게 생각하고 변화시키는 시간을 가질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예배에 왔더니 갑자기 뭔가를 주더라’가 아니라 성찬의 자리, 예수님의 보혈과 은혜의 자리에 서기 위해 우리의 한 주를 준비하는 삶으로 살아보고 이 예배의 자리로 나아갈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2. 4월 15-20일 (월~토) 고난주간 특별 새벽예배
이 기간에 우리는 평일에는 5:30am부터, 토요일에는 6:30am부터 고난주간을 맞이하여 특별히 새벽예배를 드립니다. 말씀은 고난 주간 각 날짜마다 예수님께서 행하신 일들을 돌아보며 함께 나누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왜 새벽에 예배하는 것일까요? 저는 세 가지의 이유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첫째는,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보여주신 기도의 본이 있기 때문입니다. 마가복음 1:35은 이렇게 말합니다. “아주 이른 새벽에, 예수께서 일어나서 외딴 곳으로 나가셔서, 거기에서 기도하고 계셨다.” 둘째로, 새벽에 시간을 드려 기도하는 것은 우리의 간절함의 표현입니다. 우리가 간절하게 얻고 싶은 것이 있을 때 우리는 가장 좋은 것을 주어서라도 그것을 얻으려고 합니다. 새벽에 기도하는 이유는 내 삶에 그만큼 간절히 얻기를 바라는 것이 있기에 내 삶에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인 잠을 포기하면서까지 하나님께 매달린다는 의미입니다. 셋째로, 우리 헌신의 표현입니다. 헌신이란 다 쓰고 남은 것을 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내게 있는 가장 첫 번째의 것을 드리는 것을 말하지요. 그러므로 고난 주간에 우리가 새벽예배를 함께 하기를 요청하는 이유는 이처럼 예수님을 닮아가며 간절하게 우리의 헌신을 주님께 드렸을 때 하나님께서 응답하시는 은혜가 얼마나 클 것인지를 알 수 있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함께 하십시다. 우리 공동체에 하나님의 은혜가 부을 곳이 없이 채워지는 은혜를 이 새벽예배를 통해 함께 경험해 보십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