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교회 목회자 컨퍼런스를 다녀왔습니다. 컨퍼런스를 다녀오면 항상 여러 가지 질문들이 생기고 또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에 대한 마음이 생겨납니다. 이번에는 특별히 배워야 하는 삶 공부를 들은 것이 아니라 “가정교회 길라잡이”라는 가장 처음 듣는 수업을 들었습니다. 그동안 몇 년을 지나면서 어쩌면 좀 흐트러져 있을지도 모르는 제 마음을 다잡아보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그동안의 우리교회의 모습에서 바뀌고 싶은 부분들이 여럿 보였습니다. 앞으로 지속해서 이 목회편지를 통해서 이런 변화를 우리 식구들에게 알리고, 동의를 구해야 할 것은 구하면서 걸어가보겠습니다.
먼저 오늘부터 변화될 예배순서에 대한 얘기를 드리려 합니다. 우리 교회의 세 축에는 은혜로운 주일예배 (인간의 의지적인 부분을 만져줍니다)가 있습니다. 주일예배에 성공하지 못하면, 주님의 소원을 이루어드리는 삶을 이루는 것은 참 어려워집니다. 그런데 주일예배를 이야기할 때, ‘은혜로운’ 이라는 단어와 ‘의지적인’ 이라는, 꽤나 이질적인 두 단어가 같이 들어가 있습니다. 은혜롭다면 감정을 의미한다고 생각하는 것이 일반적이지 않습니까? 그런데 왜 이 두 이질적인 단어는 이처럼 같이 붙어 있는 걸까요?
주일예배는 참석하는 식구들의 마음을 따뜻하게 위로하고 격려하는 기능을 넘어서는 역할을 합니다. 주일예배와 우리가 살아가는 한 주간의 삶이 서로 연결되지 않으면, 우리는 예배당에서의 나와 세상에서의 나 사이에서 늘 갈등하며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삶과 예배가 동떨어져 있었다는 죄책감을 느끼게 되면 예배가 은혜로울 수가 없습니다. 오히려 삶과 예배가 같이 노니까 삶에서의 헌신으로 인해 주님이 뭔가를 주실 거라는 기대로 예배에 참여할 수 있게 됩니다. 여기에서 은혜가 일어납니다. 그러므로 주일예배에서는 무엇인가를 붙들고 한 주간을 살아갈 수 있는 “So What?”을 붙들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저는 설교를 하면서 때로는 좀 뜬금없어 보이는 때에라도 가능한 구체적으로 “So What?"을 늘 얘기하려고 노력합니다.
예배 안에서 “내가 한 주간을 이렇게 살아보겠다”는 의지적인 결단이 일어나는 일이 있을 때, 우리는 주일예배와 주중의 우리 삶을 선으로 이으며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런 결단은 마음으로 하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누군가에게 말하지 않고 혼자 마음으로 하는 결단은 깨어지기가 너무 쉽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교회에는 ‘헌신석’이 있습니다. 예배 안에서 하나님이 내게 주시는 말씀 하나 붙잡고 한 주간 그렇게 살아가 보겠노라 의지의 결단을 적어보고, 여러분은 그렇게 살아보시고 저는 뒤에서 기도해드리는, 매 주 변화하는 그리스도인을 향한 협업이 일어나는 자리입니다.
헌신석을 얼마나 사용하느냐가 내가 얼마나 변화하느냐를 보여주는 증거가 됩니다. 그래서 이번 주부터는 설교 후에 “침묵의 기도”를 1분 30초 드리게 됩니다. 우리가 예배 안에서 회중으로 주님을 만나지만, 어느 순간은 주님과 독대하는 때가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그 후 다같이 일어나서 찬양을 한 곡 합니다. 찬양 직전에 제가 “헌신의 초청”을 할겁니다. 찬양을 하는 도중 헌신석으로 나오셔서 카드를 적으시고, 축도를 마치기를 기다리고 계시면 제가 가서 기도해 드리겠습니다. 예배를 통해 우리의 삶이 변화하는 자리로 걸어가 보십시다.